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 (문단 편집) == 여파 == 폴란드에 의해 수도를 잃은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은 어쩔 수 없이 [[카우나스]]를 임시수도로 삼았고 [[제2차 세계 대전]]의 시작인 [[폴란드 침공]]으로 소련이 동부 폴란드를 점령한 후에야 빌뉴스를 되돌려받을 수 있었으며, 폴란드에 의해 세워진 괴뢰국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과 이의 병합은 한때 한 연방을 이루기도 했던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망가뜨려 놓았다. 1938년 [[나치 독일]]과 [[소련]]의 위협이 눈앞에 들이닥치고 나서 폴란드가 전쟁 최후통첩을 보내고 나서야[*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외교관계 재수립은 리투아니아가 사실상 새 국경을 인정한다는 것을 뜻했기에 리투아니아는 외교 관계 재수립을 계속 거절하였다. 그래서 1938년 3월 17일, 48시간 안에 폴란드와의 외교관계를 재수립하지 않으면 침공하겠다고 폴란드가 위협하자 전쟁에서 이길 자신은 없던 리투아니아는 어쩔 수 없이 폴란드와의 외교관계를 재수립했다.]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정식으로 수교했으며 그 전까지 두 나라는 철로나 우편 같은 것도 연결되지 않은 철저한 단교 상태였다. 이 탓에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형제의 나라에서 한동안 적대관계로 변모하였고, 20세기 후반에 나란히 소련치하에서 다시 고생했던지라 다시 동병상련격의 처지가 되었지만, 어쨌든 이 시기 때문에 리투아니아에서는 폴란드에 대해 미묘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.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과 관련된 위기에서 70년 이후, [[소련 해체]]가 임박한 [[1990년]], 갓 재독립을 선언한 리투아니아의 빌뉴스 인근 지역에서 리투아니아의 폴란드인들이 "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Polish_National_Territorial_Region|폴란드계 자치 지역]]"을 선포하는 해프닝이 있었다. 구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 지역의 일부에 빌뉴스 시를 완전히 에워싼 모양새의 이 자치 지역은 발트 3국의 독립을 막고자 했던 [[소련]]의 암묵적 지지를 받았고 [[동폴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]] 설립을 주장하던 얀 치에차노비츠가 소련 서기장 [[미하일 고르바초프]]와 독대를 하기도 하였다. 하지만 과거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과는 다르게 이 폴란드계 자치 지역은 갓 민주화를 해내고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지지하던 [[레흐 바웬사]] 정부에게 무시를 당하였고 이어지는 1991년 리투아니아 정부가 이러한 자치지역 수립 시도를 위헌이라 규정, 자치지역 수립에 참여했던 평의회들을 전부 해산하면서 끝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